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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기업 연수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었다. 보안요원이라는건 사실상 경비원이다. 경비원 일을 해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근무시간은 24시간 격일제 근무라고 하는데 하루종일 일하고 다음날은 쉬는 방식이다. 즉 한달에 15일만 일하고 주말이나 휴일은 따로 없다. 24시간 근무라고 해서 잠도 안자고 일하는건 아니고 하루에 최소 7시간은 잘수 있도록 휴식시간이 정해져있다. 단 휴식시간이 로테이션으로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신체리듬을 유지하기는 좀 어렵다.

식사는 하루 3번 연수원 내의 구내식당에서 먹을수있다. 대기업 연수원이라서 그런지 밥은 매우 맛있다. 부페식으로 철제 식판에 직접 떠가서 먹는 방식인데, 밥과 국이 있고 반찬이 평균 4가지에 후식이 따로 3가지가 있다. 후식은 양상추 샐러드와 과일이 고정으로 나오고 아침에는 소보루빵이 추가되고 점심,저녁에는 과일이 한종류가 더 추가된다. 반찬은 돼지갈비 구이(폭립)나 왕새우 튀김같은 왠만한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쉽게 볼수없는 요리가 자주 나온다. 왠만한 부페보다 맛있다는 느낌이었다.

밤에는 구내식당 직원들이 퇴근하기 때문에 밥을 먹을수 없다. 그래서 밤 12시 이후에 정문에서 근무할때 컵라면을 먹는다. 또 주말이나 명절같은 날에는 구내식당이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식당 직원들이 미리 요리를 여러가지를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러면 보안팀은 식사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가서 요리를 꺼내서 휴대용 가스버너에 데워서 먹는다. 음식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만들어 두기때문에 뭘 먹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근무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주로 근무지에 앉아서 대기하면서 누가 뭘 요청하면 들어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한가할때는 핸드폰을 봐도 되기때문에 근무가 힘들다는 느낌은 별로 안든다.

가장 힘든일은 열쇠작업이라고 해서 숙소동의 방열쇠를 관리하는 일이다. 연수원 내에 기숙사동이 있어서 각방의 열쇠를 모두 보안팀에서 관리한다. 150개 정도의 방열쇠를 매일 숙소배정표에 따라서 일일히 방문에 꽂고 빼야된다. 열쇠작업을 하는데만 하루에 1시간 정도 걸린다.

또 가끔 버스를 통제하기도 한다. 연수를 온 직원들이 탄 버스가 연수원에 들어오면 건물 밖으로 나가서 수신호로 버스를 인도해서 건물앞의 정해진 위치에 정차하게 한다. 버스가 한두대면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가끔 한번에 10대 이상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때는 발광봉을 들고 정해진 안내위치로 가서 계속 버스를 안내해야 한다.

일도 바쁜 편이긴 하지만 정말 힘든점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보안팀 내의 군기다. 내가 있는 근무조에 선후배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는 선배가 한명 있었는데, 그 선배는 8명밖에 안되는 보안팀을 거의 군대 수준으로 관리했다.

그 선배에게는 자신보다 나이가 3살 더 많은 후배가 있었는데 선배 자신은 그 후배에게 반말을 하고 후배는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게 했다. 선후배 관계가 나이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외에도 아침에 자신에게 인사를 할때 목소리가 작거나 허리를 작게 숙이면 다시 하라고 혼냈다. 또 자신과 대화를 할때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표정이 굳으면 혼내기도 했다. 정말 군대에 다시 온 느낌이었다.

회사 생활에서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황당하기까지 한 군기문화는 처음이었다. 빨리 그만두는게 낫겠다고 느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제일 재미있었던건 대기업의 임원들을 직접 본 것이었다. 사장이나 회장같은 신문에 나오는 사람들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아저씨구나(?) 하는 깨달음을 느꼈다.

또 한가지 재밌었던 것은 새해초에 그룹의 임원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강연중에 쉬는 시간이 되니까 300명정도 되는 그룹의 임원들이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보는게 아니라 행사장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마치 미국의 스탠딩 파티를 보는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이 행사도 인맥을 관리할 기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한 시간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꽤 바쁘게 일해서인지 경비일에 대해서 많이 배운것 같다. 한달에 15일만 일하고 200만원을 받는일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할 일이 없으면 또 경비일을 해도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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